박열 그리고 가네코 후미코, 인간을 나아가게 만드는 의지에 관한 이야기/ 약스포
- 리뷰 이야기 Reviews/영화 Movies
- 2019. 3. 1. 23:45
개인적으로 이준익 감독을 참 좋아합니다. 대단한 영화를 찍기보다는, 스크린 앞으로 고개를 쭉 빼다가, 엉덩이를 들고 점점 다가가게 만드는 영화를 찍어낸다고 평가합니다.
물론 이준익 감독은 천만 관객을 동원한 왕의 남자와 사도같이 작품성을 두루 인정받은 영화를 찍었으니 대단한 영화를 찍은, 그리고 앞으로도 찍을 역량을 갖춘 감독입니다.
다만, 제가 이준익 감독의 영화 중에 좋아하는 영화들이 라디오 스타나 오늘 소개할 영화, 박열이기 때문에 본인이 듣는다면 억울할 수도 있는 평가를 내리게 되었네요.
박열을 보며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의외로 영화 시작과 함께 등장합니다. [ 이 영화는 고증에 충실한 실화입니다. ]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많은 영화들을 봤지만, 이런 문구가 등장하는 경우는 처음이네요. 보통은 실화에서 영감을 받은 허구라고 하죠.
이런 단정적인 문구는 실화가 아닌데도 실화라고 거짓말하는 호러물에서나 쓸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사적 인물을 다루는 영화에서 사용하다니 신선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이야기들이 더 진실되게 다가왔죠.
영화 박열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최희서가 열연한 가네코 후미코부터 시작해야겠죠. 사실 한 인물에 대한 평가를 고작 2시간뿐인 영화 한 편으로 내린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가 화면으로 만나는 인물은 감독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으로 걸러지고 염색된 조각일뿐이죠.
하지만 그럼에도 제가 가네코 후미코에 대해 짧게 평하자면, 저의 느낌은 이렇습니다. "신비롭다."
박열(이제훈)을 만나게 된 계기도 박열이 쓴 시를 보고 마음이 움직여서 였죠. 그리고 자신이 주도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내려는 의지는 보는 내내 저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부끄럽게 고백하자면, 이 영화 박열은, 사실 박열에 대한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저에게는. 저는 영화 제목을 가네코 후미코로 바꾸고 편집만 살짝 고쳐도 충분히 좋은 영화가 되었을거라 생각합니다.
결국 사람은 태어났기 때문에 살아갑니다. 이후의 삶에 어떤 이유를 가져다 붙여도, 인간은 누구하나 자신의 의지로 삶을 시작하지 않습니다. 어느날 정신차려보니 태어나져있고 살고 있었죠. 그렇게 내동댕이 쳐지듯 뛰어든 삶의 레이스지만, 어느 시점을 넘어서면 나의 의지가 내 삶에 깊이 관여하게 됩니다.
물론, 처한 현실은 모두 다릅니다. 독립된지 벌써 70년이 훌쩍 넘은 지금의 저와, 일제 시대의 공기를 마시는 영화 속 인물들은 결코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 없죠.
그런데도 영화속 인물, 특히 가네코 후미코는 자신의 의지로 삶을 살아냅니다. 시작은 나의 의사와 상관없었지만, 일단 삶의 가속이 붙은 후에는 뛰는 방향과 속도를 자신이 원하는대로 정하게 되죠. 비록 반대로 부는 바람을 헤치며 달리는 인생이라도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살아냅니다.
세상은 부조리로 가득합니다. 정확히는 저희가 어린시절 배우는 것들이 부조리죠. 세상은 절대 동화속 세상처럼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 동화들이 세상의 이치인양 알려주는 교육들이 문제입니다.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교육이 문제죠. 부조리가 정상인 세상. 그야말로 부조리 그 자체인 세상. 평화가 흔한 지금 시대의 저도 부조리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는데, 일제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세상은 얼마나 부조리 했을까요.
하지만 가네코 후미코와 박열은 이 물결을 거스릅니다. 일본이 관동 대지진 수습을 위해 벌인 조선인 학살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자신들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무기, 의지를 이용해 맞서 싸웁니다.
(영화에서 조금 아쉬운 점이라면, 가네코 후미코와 박열의 의도가 아주 명확히 묘사되지 않는다는 점이죠. 결과적으로 두 사람의 노력이 관동 대지진에서 벌어진 조선인 학살을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지만, 이것이 정말 의도된 것이었는지는 영화에서 조금 두리뭉실하게 표현됩니다.
물론 한 인물의 행동은 그 인물조차 진의를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으니 조금 애매하게 표현한 것이 감독의 의도일 수는 있겠네요.)
영화를 보는 내내, 계속 제 자신에게 반문하게 됩니다. 과연 나라면, 과연 나라면, 과연 나라면 저때 저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반대로 만약 저 두 사람이, 아니 저때 모든 조선인들이 지금 시대에 태어났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어떤 삶을 살았을까.
여전히 저는 영화속 세상에서 주인공들과 같은 멋진, 기개넘치는 행동을 하지 못했을거라 봅니다. 저는 매운 음식에 약하거든요. 통각에 예민하죠. 그래서인지 가네코 후미코와 박열의 행동, 그리고 거기에 당황하는 일본인들을 보며 대리만족과 카타르시스를 느꼈습니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내가 아니라도 저런 사람들이 있으니 한국이 독립을 할 수 있었겠구나... 같은 생각도 안한것은 아닙니다.)
(일본 만화의 한 구절이지만)제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을 적는다면, [ 인간을 막는 것은 절망이 아닌 좌절, 인간을 나아가게 하는 것은 희망이 아닌 의지 ] 를 떠올립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함속에서도 더듬더듬 발걸음을 옮길 수 있다면, 그건 앞에 낭떨어지가 없다고 확신해서가 아니겠죠. 어쩌면 천길 벼랑끝에 메달릴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나를 등떠미는 것 아닐까 합니다.
박열이 가네코 후미코에게 혼인신고를 하자고 하는 장면이 그래서 더 뭉클했습니다. 자신의 죽음이 예정되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 끝이 정해진 철길 위를 달리는 폭주 기관차에 올라탔지만, 무뎌지지않는 모습에 같은 인간이라는 자부심이 느껴질만큼 인상적이었습니다.
나의 마음 한구석 어딘가에도 저런 멋진 의지 한줌이 숨어있을 것이다. 나도 같은 인간이니까.
예상외로 보고난 후 용기를 얻게된 영화였습니다. 비록 뜻하는 바를 완전히 이루지는 못했지만, 의지는 세상 무엇보다 강하며, 그것을 누구나 (아마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영화.
(개인적인 베스트 샷은 가네코 후미코가 안경을 쓰고 법정에 출두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냥 개인 취향이라고 적어놓을까요. 비슷한 장면으로 스머글러의 한 씬을 꼽고 싶은데 이건 좀 많이 서브컬쳐의 영역이니...)
저에게도 저런 의지가 있을까. 있겠죠? 저도 같은 인간이니까요. 인생이 언제나 좋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왠지 헤쳐나갈 수 있을것 같습니다. 안되면 어쩔 수 없죠. 그래도 분명 만족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영화 박열은, 아니 영화 가네코 후미코와 박열은 그런 의미로 제 기억에 남았습니다. 이 의미는 정말 오래 남아있을것 같습니다. 정말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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