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쿠아맨의 성공이 DC를 구원할 수 있을까? / 제임스 완 이후가 궁금해지는 히어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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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 1. 13. 20:14
실패할 수 없는, 실패해서는 안되는, 실패할거라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감히) 수많은 영화들을 망쳐버리고 나서 드디어 DC가 정신을 차렸습니다.
작년말 개봉한 아쿠아맨은 다크나이트 이후, DC가 히어로 영화를 어떻게 찍어야할지 감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편, 이 성공을 이어갈 수 있을까 싶은 물음표를 함께 던져준 영화입니다.
아쿠아맨의 스토리는 매우매우 단순합니다. 니콜키드먼이 등대에서 렛잇고... 는 아니지만 어쨋든 그 분위기를 연출하다가 갑자기 싸움을 하고는 바다로 돌아갑니다.
모든 첫번째 히어로물이 거치는 영웅의 탄생을 짚어주는데요, 다행히 아쿠아맨은 그 전개가 빠릅니다. 다른 영화였다면 한편은 통째로 잡아먹었을 아쿠아맨이 영웅이 되어가는 과정을 초반 10분과 이후 잠깐 등장하는 회상으로 넘어갑니다.
이는 매우 훌륭한 전개입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수많은 영웅들의 솔로 무비에서 그 영웅의 (너무 뻔해서 별로 궁금하지 않은) 탄생기를 봐왔습니다. 빨리 히어로가 으라차! 악당들을 때려잡는 모습을 보고 싶은데 영화는 자꾸 그 영웅의 어린시절 모습부터 보여줍니다. 결혼식 온것도 아니고 출생부터 쭉 다이제스트 해줄 필요는 없는데 말이죠.
아쿠아맨은 그런 오류를 범하지 않습니다. CG의 힘으로 젋어진 니콜키드먼이 아이를 두고 바다로 갔다... 는 간단한 밑밥만 깔고, 바로 성인이 된 아쿠아맨을 보여주죠. 이 시점에서 DC가 드디어 감을 잡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블은 솔로무비들에서 항상 해당 영웅의 출생부터 현재까지를 먼저 보여줍니다. 그러면서 캐릭터성을 구축해내죠.
영웅의 출생은 그 영웅의 정체성입니다. 아이언맨은 군수업자의 이기적인 모습과 공돌이의 합리적인 모습을 출생 과정에서 어필합니다. 캡틴 아메리카의 이타적이고 포기를 모르는 강직한 모습도 스티브가 군에 입대하는 출생 에피소드에서 잘 보여주죠.
그런데 이런 출생 에피소드가 솔직히 좀 지루합니다. 우리는 영웅이 때려부수는 걸 보러 시트에 앉았는데 스크린에서는 자꾸 인간극장을 보여줍니다. 지루하죠.
마블은 이점을 먼저 알아차렸습니다. 어벤져스 인피니티워에서의 삭제된 분량 중 상단수가 타노스의 배경스토리와 관련된 이야기라고 합니다.
블랙팬서도 마찬가집니다. 블랙팬서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는 없습니다. 블랙 팬서 영화 시작과 함께 블랙팬서는 이미 블랙팬서입니다. 관객들에게 지루한 밑밥을 깔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마블은 이미 알았죠. 그리고 DC가 드디어 알아차린것 같습니다.
덕분에 아쿠아맨은 초반 지루한 부분 없이 논스톱으로 달려갑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들이 정말 단 하나도 말이되는 것이 없습니다. 스토리의 개연성은 정말 엉망입니다. 하나하나 따지고 들려고 하려고 하면 한도 끝도 없을만큼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늘어놓습니다.
그런데 상관없죠. 원래 히어로 무비는 그런겁니다. DC는 다크나이트 이후 뭔가 말되는 영화를 찍고 싶었는지 주절주절 말이 많았습니다.(물론 그러고도 나온것이 마사... 이기는 하지만)
관객들이 다크나이트를 원할때야 다크나이트가 먹히지만, 누구도 저스티스 리그에서 긴 설명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DC가 구원투수로 제임스 완을 기용한 건 정말 탁월했습니다.
히어로물 감독 자리에 앉으면 얼마나 하고싶은 이야기가 많을까요. 세상이 왜 위기에 빠졌고 그 위기를 왜 이 영웅이 해쳐나가야하는지 구구절절 늘어놓고 싶은 말이 많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임스 완은 그러지 않습니다. 그냥 다 퉁쳐버립니다. 아쿠아맨이 왜 열심히 영웅 수련을 받아? 엄마 만나려고. 세계에 위기는 왜 와? 그냥 바다의 왕이 지배욕에 불타서. 뭐 이정도로 그냥 은글슬쩍 넘어갑니다. 그리고 빈자리는 모두 화려한 영상과 액션으로 채웁니다.
(니콜키드먼이 바다로 돌아가고 바로 장성한 아쿠아맨이 나오는 것을 보며 박수를 쳤습니다. 제임스 완 만세!)
물론 아쿠아맨은 영화적으로 문제가 많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아쿠아맨 솔로무비에서 아쿠아맨의 파워가 들쭉날쭉 하다는 점입니다. 영화 시작에는 잠수함을 들어올릴만큼 엄청났던 아쿠아맨의 파워가 중반에는 파워드 슈트를 입었다고는 하지만, 귀족도 아닌 아틀란티스인에게 제압당하는 수준으로 떨어집니다.
심지어 검은 가오리에게도 쩔쩔 매는 수준이죠. 아니, 바다의 왕이라면서 고래도, 상어도 아니고 가오리 하나를 제대로 상대 못하다니...(물론 이건 빌런의 이름 문제입니다만...)
저스티스 리그를 본 관객이라면 이런 아쿠아맨의 왔다갔다하는 강함 묘사에 더 정신이 없었을 것 같네요.
아니 저스티스 리그에서는 슈퍼맨에게 한손으로 제압당했던 말하는 물고기가 갑자기 잠수함을 들고 날아오르는 어이없는 오프닝을 보게됬으니까요.
DC 히어로 영화가 마블에 크게 뒤지는 이유 중 하나로 저는 캐릭터간의 파워밸런스를 꼽습니다. DC의 파워 양대 산맥 슈퍼맨과 원더우먼은 사실 그냥 신적 캐릭터의 남자 여자 버전입니다.
저스티스리그에서 봤다시피, DC 세계의 문제는 그냥 슈퍼맨이 크앙! 하면 끝나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영화를 그렇게 만들어 놓았죠.
자리에서 스테판울프에게 펀치를 맞으면서도 평-온 했던 슈퍼맨의 모습은 그래서 인상적입니다. 아니 저렇게 주인공들을 먼치킨을 만들어 놓으면 나중에 뒷감당을 어떻게 할려고... 그런데 뒷감당을 안하더군요. 그리고 영화는 망합니다.
아쿠아맨도 마찬가지죠. 아쿠아맨은 잠수함도 들어올리고 바다의 힘까지 끌어다 쓸 수 있게됩니다. DC의 영웅들과 마블의 영웅들을 비교하면 어이가 없는 수준이죠.
마블의 영웅들은 인간 기준에서는 엄청난 영웅이지만, 모두 뚜렷한 한계가 있습니다.(물론 시네마틱 유니버스 기준에서) 아이언맨은 수트를 벗으면 그냥 일반인이고, 캡틴 아메리카는 보약 먹고 강해진 군바리 수준, 헐크는 내면의 녹색 괴물이 파업하면 머리좋은 교수 아저씨, 블랙 위도우는 무술 잘하는 스파이, 여기에 코믹스와 비교해 대대적으로 너프를 먹은 비전, 스칼렛 위치, 토르는 그냥 일반 히어로 수준으로 나오죠.
어벤져스는 이름은 멋지지만 파워의 한계가 분명하고 그래서 위기에 빠질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그래서 극의 긴장감이 있죠.
그런데 슈퍼맨으로 대변되는 DC의 영웅들은 원더우먼부터 이번 아쿠아맨까지 그냥 문자그대로 슈퍼맨입니다. 과연 저 엄청난 괴물들을 위기에 빠뜨릴 자가 있을까, 그리고 그 위기의 순간에 관객들이 긴장감을 느낄 것인가 한다면... 글쎄요... 입니다.
히어로의 한계와 약점을 분명히 보여주고, 그 한계안에서 적절하게 극을 구성했던 캡틴 아메리카2 윈터솔져는 그래서 명작으로 추앙받고 있는거죠.
그런데 아쿠아맨은 솔로 무비에서 약점없는 모습으로 나옵니다. 그냥 짱 쎕니다. 이런 괴물들이 이미 둘이나 기다리는 저스티스리그에 또다른 괴물 아쿠아맨이 추가되었으니 배트맨의 생각대로 우리는 저스티스리그로부터 지구를 지킬 고민을 해야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다시 아쿠아맨 영화로 돌아오면, 스토리의 개연성을 제외한다면 여러측면에서 잘만든 수작입니다. 일단 구성이 지루하지 않습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물속에서 싸웠다면 나중가면 일렁이는 화면만 봐도 지루함이 파도치겠지만, 영화는 사막에서 인디아나존스를 찍거나 이탈리아에서 나쁜녀석들을 찍으며 다양한 액션을 보여줍니다.
숨겨진 보물을 찾아나선다는 구성도 흥미롭죠. 내셔날 트레져 수준의 퍼즐은 아니라도, 중간중간 재치넘치는 퍼즐 풀이도 숨어있어 액션만 몰아쳤을때 받을 수 있는 피로감도 없습니다. 컨저링 유니버스는 휘청휘청하지만 제임스완의 곽객을 쥐락펴락 하는 솜씨는 여전히 살아있네요.
영화의 스토리는 그냥 바다로 간 블랙팬서 입니다. 아니 수많은 창작물에서 사용된 왕위에 오르기 위해 돌아온 첫째 왕자 서사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영화가 재밌는것은 그런 서사가 대중적으로 먹히는 플롯이고(저는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영상미로 플롯의 구멍을 메워주기 때문입니다.
ILM이 참여한 CG는 동시대 최고작 중 하나죠. 아바타2가 나오기전까지는 아쿠아맨을 단순 화면 퀄리티로 이길 수 있는 영화는 없을듯 합니다.
(개인적으로 감탄했던 장면 중 하나.)
(컨저링의 주인공 패트릭 윌슨이 등장하며 제임스 완의 페르소나 자리에 등극했습니다.)
아, 그리고 빠질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마블까지 통틀어 가장 캐미터지는 아쿠아맨과 메라 커플! 아쿠아맨 재미의 20%는 이 커플 보는 재미에서 나옵니다.
아쿠아맨의 사이드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존재감 강력한 메라로 인해 아쿠아맨은 마블이 보여주지 못한 로맨스와 히어로물의 적절한 조합에 성공했습니다.(앤트맨과 와스프는 좀 약했어요.) 우려가 많지만, 저는 이 커플의 성공이 DC가 다시 날아오를 초석이 되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이 아저씨가 돌프 룬드그랜이었다니...)
스토리는 말이 되는 것이 하나도 없고, 등장인물들의 파워 벨런스는 들쭉날쭉하지만, 화려한 영상, 시원한 액션, 케미돋는 커플로 재미하나는 확실한 오랫만의 DC 신작, 아쿠아맨.
이 성공을 DC가 다음 작품으로 이어갈 수 있을지 너무 궁금해지는 작품, 아쿠아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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