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성 내려오는 길 | 공주 인절미 유래와 백제 천도 역사/ 한성, 공주, 부여 그리고 익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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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 11. 30. 14:26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공산성 일주를 하고 있습니다. 공주의 또 다른 세계유산인 송산리 고분군과도 멀지 않은 곳에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은데요.
공산성 곳곳에는 백제 유적터가 남아 있어 700여년 백제사를 상상하게 만듭니다. 웅진 또는 고마나루라고 불렸던 옛 공주. 공산성의 백제 시대 이름도 웅진성이지요.
그 시대 사람들은 공산성 주변을 흐르는 아름다운 금강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서쪽 금서루에서부터 이어져 왔던 공산성의 오르막길이 내리막길로 이어집니다.
부슬비가 내리는 공주 시내 전경. 낮은 산들에 둘러 싸인 모습이 아늑해 보입니다.
내려가는 계단 옆 줄지어선 깃발들이 인상적입니다. 이 공산성의 깃발들은 백제시대 세계관 중 사신도를 반영했는데요. 송산리 고분군 6호 무덤에 있던 벽화를 재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고구려의 사신도 벽화에서도 알 수 있듯 삼국시대 사람들은 동쪽 청룡, 서쪽 백호, 남쪽 주작, 북쪽 현무 이렇게 상징적인 네 동물들이 외부의 나쁜 기운을 막아준다고 생각했다네요.
깃발의 황색은 백제 사람들이 특히 중요하게 여긴 색이라고 합니다.
공산성 진남루입니다. 매표소가 있는 금서루가 서쪽문이라면 이곳은 남쪽 입구입니다.
진남루의 조선시대풍 건물이 나무와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 운치가 있습니다.
웅진 시대 이곳 공산성에 백제 왕궁이 있었다고 합니다. 사진에 보이는 곳은 도랑을 파고 여러 개의 기둥을 세우는 방식의 벽주 건물지라고 하는데요. 이러한 건축 방식은 공주, 부여, 익산 지역을 중심으로 사용되었고 왜에도 전해졌다고 합니다.
백제의 창고인 목곽고와 인공연못터도 있습니다. 공산성의 백제 왕궁 규모는 백제의 첫번째 수도가 있던 한강 유역 위례성과 비교하면 규모가 훨씬 작은데요.
이는 백제가 급하게 한성에서 공주(옛 지명 웅진)으로 천도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475년 백제 개로왕이 고구려 장수들에게 사망하고 위례성을 뺏긴 상태에서 후임인 문주왕이 공주로 자리를 옮겨 온 역사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538년 백제 성왕은 제대로 계획을 가지고 왕궁터가 넓은 부여(옛 지명 사비)로 다시 한번 수도를 옮깁니다. 그 100년 뒤쯤 백제 무왕이 익산(옛 지명 금마저)으로 다시 한번 천도 계획을 세우고 대규모 역사를 단행하나, 그 아들인 의자왕이 마지막 왕이 되면서 백제의 역사는 부여에서 막을 내리게 됩니다.
공산성 쌍수정이 오래된 나무들과 어우러져 있습니다. 쌍수정은 조선시대 정3품이라는 벼슬을 받은 나무가 있던 자리에 지어진 정자라고 합니다. 인조 임금이 이괄의 난으로 인해 공산성으로 피신왔을 때 나무를 보며 시름을 달랬다고 하네요.
흥미롭게도 그 시기에 인절미도 유래했다고 하는데요. 임씨가 인조에게 진상한 떡이 절미라고 해서 임절미라고 이름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 후 발음하기 편하게 인절미가 되었다고. 그러니까 전주 비빔밥, 포천 막걸리, 영덕 대게 처럼 인절미도 공주 인절미라고 부를 수 있겠네요.
백제부터 조선시대까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공주 공산성. 이제 내려갈 시간입니다.
사진을 찍으며 공산성을 일주하다 보니 2시간 가량 소요되었네요. 가늘게 비가 내리는 선선한 날씨 속에 걸었더니 허기가 느껴집니다. 이른 저녁을 먹으러 공산성 앞 백미고을 음식문화거리로 이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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