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디지털단지에는 더 이상의 맛집은 없다... 뭐 이런 생각에 빠진 나날입니다. 괜찮은 사무실 근처 가게들은 한 번쯤은 다 가본 것이 아닌가 싶은 느낌이라 점심 식사 포스팅은 한동안 하지 않았네요. 그런 매너리즘의 시간을 지나 제 귀에 엄청난 내공의 중국집의 소문이 들어왔습니다.
최근에 오픈한 가게 중화요리 량! 소문의 맛집을 저녁 시간에 찾았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 마음속 구로디지털단지 중국집 최고의 자리는 이시간부로 중화요리 량이 가져가게 되었음을 선언합니다.
정말정말 뜬금없는 자리에 위치한 중화요리전문점 량. 오너쉐프께서 너무 마음에 들어 선택하신 자리라고 하는데, 어떤면에서 마음에 드신겁니까... 역시 임대료... 일까요?
아직 지도에는 등록되지 않은듯 상호인 량으로 검색했을때는 지도에 나오지 않네요. 이쯤으로 가시면 량이라고 적힌 베너를 찾으실 수 있습니다.
중화요리 전문점 느낌이 드는 홍등을 제외하면 인테리어에서 중국요리집 느낌은 별로 나지 않습니다.
새로 생긴 가게답게 깔끔한 인테리어가 좋네요. 전혀 오래되지 않은 가게 느낌이라 음식에서 피어오르는 진한 내공과의 미스매치가 더 매력적이네요.
량의 기본 차림은 여느 중국집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양파! 이 양파절임을 먹는 순간 바로 느낌이 왔습니다. 여기 음식 잘하는 집이다. 분명 큰 기대없이 찾으신 분들이라면 이 양파절임을 입에 넣는 순간 뒷통수가 얼얼하실 겁니다. 풋내기같은 인테리어속에 숨어있는 고수의 날카로움! 마음놓고 기대해도 좋은 강력한 스트레이트를 탐색전없이 날려 저는 벌써 휘청휘청해졌습니다.
짜사이는 평범했으니 패스.
먼저 나온 량의 탕수육 레귤러. 레귤러라고 표현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어쨋든 이녀석이 대짜입니다.
량의 탕수육은 튀김에 포인트를 두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일반 중국집 탕수육 같지만, 이곳 쉐프의 튀김을 가지고 노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마치 비트를 가지고 노는 에미넴이 떠오르는 강약이 완벽한 튀김의 감각! 입에 넣고 이빨을 가져다 대는 순간, 느낌이 옵니다. 눈으로 보지 않았는데도 튀김이 얼마나 층층이 바삭바삭하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씹는 순간 바사삭 소리가 이빨을 진동하며 고막으로 달려듭니다.
사진으로 봐도 알 수 있는 공기층 가득한 튀김옷은 절대 쉽게나올 수 있는 솜씨가 아닙니다.
마치 탕수육이 의지를 가진 생명체같이 입안에서 부서집니다. 그런데 먹다보면, 이 식감이 다시 변신합니다. 공기가 가득했던 튀김 사이사이에 소스가 침투하며 이번에는 씹는 순간 소스를 분출하는 분수가 되어 버립니다. 영화 중간에 극의 흐름을 바꾸는 반전을 본 것같은 탕수육의 변심에 젓가락질을 멈출 수 없게 됩니다.
량의 탕수육에 더이상의 미사여구는 필요없을 것 같습니다. 스폰지처럼 공기층을 가득 머금은 탕수육을 좋아하신다면, 찹쌀 탕수육의 쫄깃함보다 바사삭 부서지는 튀김의 느낌을 좋아하신다면, 추천합니다. 량의 탕수육은 당신의 식감을 분명 만족시킬것입니다.
제가 시킨것은 아니라 한 스푼만 먹어본 마파두부. 량의 마파두부는 연두부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입에 넣으면 사르르 녹아버립니다. 그리고 매운 향만 살짝 남기고 말죠.
고등학교 1학년때 4살 연상의 누나와 3주 사귀고 농담처럼 차였다면 이런 느낌이었을까요. 은은하게 감도는 매콤함만 남기고 사라진 신비로운 연상의 여인. 물론 그런 경험은 없었지만, 이 마파두부를 한 그릇 다 비운다면, 자신을 속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중국집을 평가할 때 가장 중시하는 것 중 하나가 계란 볶음밥을 얼마나 맛있게 만드는 가. 여기에 대해서는 아직 평가를 보류하겠습니다. 량의 볶음밥도 한 스푼만 먹어봐서 아직 엄지손가락의 방향을 정할 수 없네요.
한가지 확실한 것은 볶음밥에 짜장을 함께 주지 않는, 정통의 후광이 느껴지는 볶음밥이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주문한 볶음짜장면. 탕수육의 임펙트가 강력해서 짜장면의 인상은 조금 흐릿하군요.
이 포스팅 마지막에 메뉴판 사진을 올릴텐데, 보시면 아시겠지만 가격이 제법 있습니다. 다만 그 가격이 아깝지 않은 풍성한 건더기 구성을 보여줍니다.
짜장을 볶은 솜씨도 훌륭합니다. 조미료의 맛보다는 강한 화력으로 재료를 볶아낸 그 불맛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쉐프의 의지가 느껴지는 맛. 투썸업까지는 아니라도 오른쪽 엄지를 치켜들며 윙크까지는 할 수 있는 맛입니다.
여기에 포인트가 하나 더. 성인 남자지만 세사람이 가서 많이도 시켰네요. 군만두가 있습니다. 탕수육의 튀김이 훌륭하니 군만두의 튀김은 말할 것도 없겠죠? 밀가루가 딱딱하게 씹혔던 평범한 중국집의 군만두가 아닙니다. 만두피가 겹쳐져있는 끝부분도 부드럽게 씹을 수 있는 잘 튀겨진 만두입니다.
속도 매우 충실! 돈주고 시킬 가치가 있는 군만두입니다.
마지막으로 살짝 얼은 푸딩을 후식으로 주십니다. 큰 임펙트는 없으니 넘어가도록 하죠.
중화요리 량에 대한 총평입니다. 앞서 설명한 것 처럼, 중간중간 설명한대로, 이곳은 훌륭한 중국요리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제가 모든 음식을 다 먹어본 것은 아니지만, 자극적인 맛보다는 요리 본연의 맛에 집중한, 시간을 들여 천천히 먹을 가치가 있는 음식을 제공합니다. 특히 튀김을 다루는 쉐프의 실력은 중화요리계의 카사노바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입니다. 위치가 조금 쌩뚱맞은 곳에 있지만, 10분 전후한 거리에 사무실이 있는 분들이라면 한번쯤 찾아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꼭 여러명이 가셔서 탕수육 미니를 주문해 보세요. 분명 만족하실거라 생각합니다. 잘먹었습니다.
이하 메뉴판 사진을 올립니다. 중국집인데 메뉴가 단촐한 편이네요. 그만큼 메뉴의 집중이 잘되어 있다는 뜻이겠죠.
* 구로디지털단지 중국집 죽림/ 중국식 덴뿌라를 먹을 수 있는 소중한 중식당
* 서울 구로디지털단지 점심 중식당 '타오 사천탕면' | 굴이 듬뿍 들어 해장으로 아주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