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이 뭐가 나빠에 대해 설명하자면, 먼저 감독 소노 시온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소노 시온의 영화는 뭔가 나사빠진 인물과 기과한 상황들의 연속으로 구성됩니다. 멀쩡한 사람은 엑스트라정도고 대사가 있는 인물이라면 하나도 빠짐없이 우리가 아는 상식 이란 철길에서 탈선해 있습니다. 밥시간에 약을 먹고 약 시간에 또 약을 먹은 것 같은 캐릭터들이 롤러코스터같은 상황에 억지로, 혹은 자의로 떠밀려질 때 생기는 일들을 파격적인 영상으로 담아내는 것이 특기죠.
자살클럽(2003)에서 시작한 생명에 대한 고찰이 이후 작품들속에 계속이어져, 엽기적이라 표현하기 부족함이 없는 영화를 찍지만 보고나면 오래 생각할 거리를 남기는 감독이기도 합니다.
제가 소노 시온에 대해 알게된 것은 비교적 최근작 리얼술래잡기(2015)을 접하면서 였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고어함과 피칠갑의 자극으로 승부를 보는 감독인 줄 알았지만, 그의 영화를 보면 볼 수록, 생에 대한, 그리고 욕망에 대한 고심이 조명처럼 영화 곳곳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소노 시온의 영화 중 가장 주제의식이 투철한, 그리고 보고 나서도 여운이 길었던 작품이 이 영화, 지옥이 뭐가 나빠(2013)였죠. 제목부터 반박해주고 싶은 영화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감독 : 소노 시온
각본 : 소노 시온
출연 : 하세가와 히로키, 호시노 겐, 니카이도 후미, 쿠니무라 준 등
장르 : 드라마, 액션
상영 시간 : 126분
한 무리의 아이들이 영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영화에 빠진 아이들. 영화 동아리라고 해두겠습니다.
나홍진 감독의 영화 '곡성'으로 익숙한 배우 쿠니무라 준, 무토는 야쿠자 두목으로 암살 위험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무토의 딸, CF스타 미츠코가 집에 갔을 때,
집은 온통 피바다가 되어있네요. 무토를 노린 암살범들이 무토의 아내에게 무참히 당한 것입니다.
그리고 미처 도망가지 못한 야쿠자 이케가미. 그는 미츠코와 운명적인 만남을 합니다.
그사이 사건의 주인공은 경찰에 자수하고,
이 사건으로 미츠코의 광고가 취소되고 맙니다.
이케가미는 조직으로 돌아가는 길에 영화 동아리를 만나고,
그들에게 자신을 찍는 것을 허락하죠.
영화의 신에게 비는 영화 동아리 일동. 그렇게 시간이 흐릅니다.
강산이 한번 변했네요.
강산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었으니... 영화 동아리 친구들은 여전히 동아리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무토는 여전히 이케가미의 조직과 전쟁 중입니다.
무토의 아내는 자신때문에 미츠코의 연예인 생활에 지장이 갈까 마음졸이며 10년을 보냈네요. 이제 곧 출소할 때가 되었습니다. 미츠코가 영화배우가 되었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습니다.
정착 그 미츠코는 영화 찍다가 또 도망을 갔습니다.
영화 동아리는 영화를 포기할 기로에 서고,
미츠코는 길가다 갑자기 남자를 줍습니다.
그리고 무토의 조직원에게 붙잡히죠.
딸이 영화배우가 되었다고 철썩같이 믿는 부인을 위해 무토는 자신이 영화를 찍기로 합니다.
그리고 미츠코가 주워온 남자를 감독으로 선임! 말도 안되지만 살기위한 남자의 뻥에 넘어간거죠.
어설픈 남자.
천우신조 영화 동아리를 만납니다.
갑자기 자본과 배우와 장비가 생긴 영화 동아리. 노란 쫄쫄이의 친구는 알바도 때려치우고 영화를 위해 달려옵니다.
문제는 어떤 영화를 찍냐인데..
영화 동아리 감독의 발칙한 제안. 무토파와 이케가미파의 전쟁을 라이브로 필름에 담자!
마침 이케가미파의 두목, 이케가미는 영화 동아리, 미츠코와 모두 안면이 있는 상태.
자신들의 항쟁을 카메라에 담는 것을 허락합니다.
일본 남자라면 역시 칼이랍니다.
영화 동아리 감독의 큐 사인에 전쟁이 시작됨고 동시에,
카메라도 함께 돌아 갑니다.
그렇게 훌륭히 촬영을 마친 영화 동아리.
극장에서 자신들의 영화를 상영합니다.
최선을 다한 배우들. 비록 몸은 성한 곳 없지만, 최고의 영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물론 당연하게도 영화는 이렇게 끝나지 않습니다. 위의 결말은 제 편집이 만들어낸 허상이죠. 하지만 위의 결말, 모두가 자신들이 출연한 영화를 보며 박수치고 박수를 받는 그 모습이 저에게는 더 그럴듯한 결말로 느껴졌습니다.
욕망이란 뭘까요? 식욕이 있는건 먹지 않으면 죽기 때문이죠. 수면욕이 있는건 자지 않으면 죽기 때문이구요. 욕구, 욕망, 이 끝없는 블랙홀은 인간이 살기위한 장치입니다. 그런데 이 욕망을 위해 목숨을 걸고, 끝내 목숨을 잃는다면? 그것은 주객전도죠. 그건 바보짓입니다. 살기위한 장치로 인간은 욕망을 갖는 겁니다. 하지 안으면 죽으니까 하는 거죠. 안먹으면 죽어요. 그래서 먹는 거죠.
예전에 복어독을 즐기는 사람들에 대한 다큐를 본 적이 있습니다. 미친짓이죠. 먹는 즐거움을 위해 목숨을 걸다니. 복어독에 중독된 미식가뿐만 아닙니다.
스릴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들이 올린 동영상이 이 순간에도 끝없이 유튜브에 올라옵니다. 인간은 때때로 욕망을 위해 목숨을 희생합니다. 원인과 결과가 뒤바뀐 아이러니. 그런데 이런 앞뒤가 뒤집힌 행위를 보며 인간은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욕망을 위해 목숨을 거는 행위는, 삶이란 운명에 던져진 인간이 운명에 반항하는 몸부림이기 때문이죠.
인간은 누구도 원해서 태어나지 않습니다. 삶이란 롤로코스터에 안전벨트없이 떠밀리죠. 그리고 유전자에 프로그래밍 된 욕망에 충실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다 죽죠. 원치 않았던 삶의 시작. 내가 선택하지 않은 삶을 이어기기 위해 욕망에 충실하다 보면, 어느순간 나 자신은 사라집니다. 나란 없죠. 그냥 눈뜨는 순간 낭떨어지로 굴려진 초라한 돌맹이만 있을 뿐.
누군가 발상의 전환을 합니다. 생명에 반항하기로. 연명하기 위한 욕망을 뒤집어, 그 욕망을 위해 살기로. 만약 그 욕망을 충족할 수만 있다면 목숨따윈 상관없다. 그 사람은 죽었을 수도 있어요. 그래도 죽는 그 순간 그는 오로지 그 자신이었습니다. 삶을 이어가기 위한 욕망이 아닌, 욕망을 위한 삶. DNA가 정해준 철길이 아닌 내가 개척한 삶. 목숨을 걸고 무언가를 하는 사람이 빛나는 건, 삶이란 운명에 반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그는 삶의 노예가 아니라 그 자신이 되기 때문입니다.
지옥이 뭐가 나빠는 그런 영화입니다. 떠밀리듯 살아가는 인생에 반란을 일으키는 영화. 주인공들은 모두 한순간뿐이지만 오로지 자기 자신이 됩니다.
영화를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 살아지는 삶이 아닌 내가 원하는 삶이란 무엇일까. 정말 그런 삶이 있는걸까.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시간은 많습니다. 천천히 찾아야죠.
추천할만한 영화냐고 묻는다면 망설이는 영화. 아니, 소노 시온 감독의 영화는 모두 추천하기 조금 꺼려지죠. 하지만 저는 좋아합니다. 그래서 추천은 안해도 씩 웃으면서 '나는 재밌게 봤어' 한마디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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