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위대한 비밀은 셰익스피어 희곡들의 원작자로 추정되는 옥스퍼드 백작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의 원제는 익명Anonymous입니다. 옥스퍼드 백작이 정치적인 이유로 정체를 숨기고 작품 활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 정치적인 이유라는 것이 영화에 긴장감을 더해줍니다. 에드워드 옥스포드 백작은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전 애인이자 그녀가 낳은 사생아의 아버지입니다.
동시에 엘리자베스 여왕의 최측근 킹메이커 세실가家의 데릴 사위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영화에서는 유력 가문에 속한 젊은 유부남 귀족이 연상의 여왕과 사랑을 나눈 것으로 묘사돼 있습니다.
옥스포드 백작은 제법 중요한 위치의 인물이었고 운신의 폭이 그리 넓지 않았습니다. 그가 연결된 세실 가문은 엄격한 기독교 집안으로 연극을 위험한 것으로 여기고 경계했습니다. 세실가의 가주 윌리엄 세실은 사위의 바람을 '잘 정리했듯이' 그의 저작 활동도 정리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최고 권력자라도 예술혼과 대중의 열망을 막기는 어려운 법이죠.
영화 위대한 비밀의 시작은 결과적으로 우리가 익히 아는 지점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시대의 영혼, 우리 무대의 경이, 우리의 셰익스피어'라고 무대에 오른 이가 서막을 엽니다. 일종의 '극속의 극' 형태인데요.
이 프롤로그를 통해 셰익스피어가 영미 문화권에서 얼마나 위대한 인물인지 알려줍니다. '역다 최다 공연 극작가, 37편의 희곡, 154편의 소네트 그리고 몇편의 시' 그리고 '영어로 된 인간성의 궁극적 표현'이라는 묘사는 그 정점이네요.
무대 위에서의 프롤로그가 끝나고 씬이 전환되어 옥스포드 백작들의 원고들을 품에 안고 도망 중인 극작가 벤자민 존슨이 등장합니다. 그는 세실 가문의 병사들에게 쫓기고 있는 상황입니다. 극장으로 숨어들지만 병사들은 극장에 불을 지르고 그는 결국 항복하고 붙잡힙니다.
5년 전. 옥스포드 백작과 사우스햄튼 백작이 벤자민 존슨의 연극을 보러 옵니다. 벤자민 존슨은 유리제조공의 아들이지만 고등교육을 받고 떠오르는 신예 극작가로 활동 중입니다.
그의 무대에 오른 배우 중에 셰익스피어도 있습니다. 셰익스피어는 장갑제조공의 아들로 초등 교육을 받은 후 연극 배우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영화에서 그의 모습은 화려한 것을 좋아하고 출세를 쫓는 캐릭터로 그려져 있습니다.
다시 벤자민 존슨의 연극으로 돌아와서, 그의 극에는 귀족을 우습게 풍자하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이에 세실의 명령을 받은 병사들이 들이닥쳐 벤자민 존슨을 체포해 갑니다.
위기에 처한 벤자민 존슨. 옥스포드 백작이 그를 감옥에서 꺼내줍니다. 그를 따로 부른 백작은 존슨에게 희곡들을 넘겨주면서 무대에 올리라고 말합니다. 물론 벤자민 존슨의 이름으로요.
옥스포드 백작의 희곡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열광적이었습니다. 무대가 마무리되고 극작가 인사 차례인데 존슨은 앞으로 나서길 망설입니다. 자신이 쓰지 않은 희곡에 벤자민 존슨이라는 이름을 쓰길 주저했습니다.
그렇게 존슨이 망설이는 사이 셰익스피어가 앞으로 나서 관객에게 인사합니다. 그리고 관객들은 그를 극작가로 알고 환호와 갈채를 보냅니다. 그렇게 익명의 원작자를 뒤로 하고 우리가 아는 '윌리엄 셰익스피어'라는 시대적 인물이 탄생합니다.
헨리6세, 로미오와 줄리엣, 한 여름밤의 꿈, 줄리어스 시저, 햄릿까지 대중극들이 인기를 얻고 있는 시대상과 함께 영국의 정세는 급변하고 있습니다. 40년 넘게 영국을 통치한 엘리자베스 1세(재위 기간 1558~1603년)가 고령이 되어 후계자를 선정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여왕의 측근 윌리엄 세실과 그의 아들 로버트 세실은 스코틀랜드의 왕 제임스 6세를 잉글랜드 왕으로 추대하려고 합니다. 제임스 6세는 엘리자베스 1세의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메리 스튜어트의 아들입니다. 엘리자베스 1세의 경우 헨리 8세와 '천일의 앤'으로 유명한 앤 불린의 딸로 튜터가의 마지막 왕입니다.
영화 위대한 비밀에서는 여왕의 사생아 중 하나인 에섹스 백작이 후계권을 쟁취하기 위해 앞으로 나섭니다. 그런 그를 엘리자베스 여왕과 옥스포드 백작 사이에서 태어난 또 다른 사생아 사우스햄튼 백작이 지지하고 따릅니다.
옥스포드 백작은 불안한 눈빛으로 그들의 행보를 바라보지만 결국에는 뒤에서 지지해줍니다.
그들을 세실 가문에서 가만히 놔둘리 없죠. 윌리엄 세실은 엘리자베스 여왕과 사이가 좋은 에섹스 백작의 사이를 갈라 놓습니다. 에섹스 백작을 아일랜드의 카톨릭 교도 반란 진압에 보내도록 압력을 넣습니다. 또한 그의 빈 자리에 자신의 아들 로버트 세실을 추대합니다.
그리고는 아일랜드에 첩자를 보내 에섹스 백작을 암살하려고 하지만 같이 있던 사우스햄튼 백작이 구합니다. 에섹스 백작의 암살에 실패한 세실가는 백작이 스페인과 손을 잡았다는 루머를 흘립니다. 위기감을 느낀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에섹스 백작을 잉글랜드로 다시 불러들입니다. 그리고는 그의 재산과 군대를 박탈하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에드워드 옥스포드 백작은 에섹스 백작을 돕기 위해 군중의 힘을 빌리려고 합니다. 세실가문의 독재에 대한 군중의 반발이 큰 상황이었습니다. 또한 잉글랜드 사람들은 스코틀랜드 사람인 제임스 보다는 에섹스가 왕위를 물려 받기를 원하는 분위기가 팽배했습니다.
에드워드는 세실가를 풍자하는 특별 연극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연극을 보던 군중들은 분노가 높아지고 거리로 뛰쳐나갑니다. '우리는 에섹스 백작을 원한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가 행진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가 엘리자베스 1세에게 닿기 전에 세실가 병사들의 총포 앞에 무너집니다.
셰익스피어가 특별 연극을 준비하고 있다고 누군가 밀고 했기 때문에 세실가는 소요 사태에 대비가 가능했습니다. 놀랍게도 밀고한 사람은 벤자민 존슨입니다.
그 사이에 존슨에게도 사건이 있었습니다. 존슨은 셰익스피어가 옥스포드 백작과 직접 접촉한 것을 알고 싸우다가 사이가 완전히 틀어지고 맙니다. 세익스피어는 옥스포드 백작을 찾아가 그의 진짜 정체를 밝히겠다고 협박해 자금을 뜯어내고 그 돈으로 대극장을 지었던 것이죠.
그 과정에서 셰익스피어와 싸운 벤자민 존슨은 배제되고 그가 쓴 극본들은 셰익스피어의 대극장에 오를 수 없게 됩니다. 무력감과 좌절감에 빠진 벤자민 존슨은 셰익스피어가 특별극을 준비하고 있다고 밀고하기에 이릅니다.
결과적으로 에섹스 백작은 군중의 힘은 커녕 적은 수의 병사만 데리고 엘리자베스 1세를 만나러 갑니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로버트 세실의 병사들에 포위되고 맙니다. 함정이었던 거죠. 세실은 여왕에게 에섹스가 반란을 일으켰다고 거짓말을 하고 세실을 더 신뢰하는 여왕은 에섹스를 반역자로 낙인 찍습니다.
결과적으로 옥스포드 백작이 킹 메이킹에 실패한 것입니다. 체포되는 여왕의 두 사생아를 참담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에드워드 옥스포드 백작. 창 밖으로 빗물이 흘러 내립니다. 그리고 그런 에드워드 백작에게 로버트 세실이 접근해 놀라운 이야기를 펼쳐 놓습니다.
----- 스포 주의 -----
바로 여왕의 첫 사생아가 에드워드 옥스포드 백작이었다는 것을요. 그리고 원래 세실가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후계자로 옥스포드 백작과 그의 아들을 차례로 추대할 생각이 한 때는 있었다고요.
엘리자베스 1세가 16살 때 임신했던 아이를 세실가문에서 은밀히 처리했고 다른 사람들(여왕 조차도) 모르게 옥스포드 가문에서 성장합니다.
그 후 자라난 소년 에드워드는 20대의 여왕을 궁에서 만나 자신이 직접 만든 연극을 선보이는 일도 있었습니다.
에드워드가 청년이 된 후에는 30대의 여왕과 무도회에서 춤을 추며 사랑에 빠집니다. 이미 세실의 딸과 혼인한 상태였음에도요. 둘은 연인이 되지만 엘리자베스 여왕이 임신하고 윌리엄 세실의 압력으로 결국은 갈라지게 됩니다. 서로 영원히 만나지 않기로 합니다. 그것이 현재 시점으로 부터 약 40년 전 이야기.
여왕이 실은 자신의 어머니이고 그들의 관계가 근**간이라는 충격적인 이야기. 옥스포드 백작은 한동안 실의에 빠집니다. 하지만 에섹스 백작에 이어 사우스햄튼 백작이 곧 교수형에 처해진다는 소식을 듣고 수십년 만에 여왕을 찾아갑니다.
그는 여왕 앞에서 간청합니다. 우리 아들을 살려달라고 말합니다. 여왕이 알지 못했던, 혹은 알려고 하지 않았던 사우스햄튼이 우리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밝힙니다.
여왕은 옥스포드 백작의 간청에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조건을 내겁니다. 사우스햄튼이 왕족임을 알리지 말것, 희곡들을 앞으로도 백작의 이름으로 발표하지 말 것.
백작은 받아들입니다. 그렇게 여왕과 백작은 마지막으로 만나고 다시 헤어집니다.
얼마 뒤 엘리자베스 1세는 노환으로 사망하고 옥스포드 백작도 오래지 않아 사망합니다. 그 전에 옥스포드 백작은 벤자민 존슨을 불러 마지막 원고들을 잘 부탁합니다. '자넨 날 배신했지만 내 말들은 배신하지 않을 사람이네'라면서요.
그리고 영화는 그 시점에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벤 존슨이 품에 백작의 희곡들을 안고 극장으로 도망쳤다가 붙잡히죠. 극장은 화마에 삼켜지고 존슨은 세실가로 잡혀 들어가 고문 위기에 처합니다.
옥스포드 백작의 남은 원고들의 위치를 말하라고 추궁당하는 존슨. 그는 불에 타버렸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알고 있었으니까요.
우여곡절 끝에 생각보다 빨리 풀려난 존슨은 불타버린 극장을 찾아갑니다. 그리고는 잿더미 속에서 상자 속에 숨겨두었던 원고가 타지 않고 남아 있음을 발견합니다. 그는 감격한 모습으로 옥스포드 백작, 아니 이제는 셰익스피어의 원고를 소중히 쓰다듬습니다.
나중에 벤 존슨은 제임스 1세의 궁전 소속 시인인 계관 시인이 됩니다. 잉글랜드 최초의 계관시인이라고 하네요.
엘리자베스 1세 다음 왕인 제임스 1세도 희곡을 즐겨 봤습니다. 영화에서 제임스 왕이 로버트 세실을 옆에 두고 셰익스피어를 칭찬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이어 영화 위대한 비밀의 결말입니다. '제임스 왕의 궁전에서 로버트 세실이 최고 실권자로 남았다. 하지만 그런 그도 커지는 연극의 인기를 막지 못했다'는 내레이션과 함께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이로서 천일의스캔들, 골든에이지에 이은 16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한 시대극 영화 몇 개의 리뷰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각 영화들 안에서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모습이 다양하게 그려지는 부분이 흥미롭습니다.
영화 골든에이지에서 해적과의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지만 결국 '짐은 국가와 결혼하였다'라고 말하던 처녀 여왕의 이미지였다면 '위대한 비밀'에서는 권력 지향적이면서도 열정적인 면모를 갖춘 캐릭터네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에드워드 옥스포드 백작은 '여왕의 권좌와 명성 지키기'라는 우선 순위에서 밀린 것으로 보입니다. 달콤했던 잠시의 사랑 뒤에 남은 것은 40년이 넘는 결별이니까요. 덕분에 '시대의 영혼'이라 칭송받는 희곡들이 셰익스피어의 이름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겠지만요.
물론 위대한 비밀은 픽션입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에 관한 연구에 비해 셰익스피어 자체에 대한 정보는 적기 때문에 이 같은 영화들이 나올 수 있는 것이죠.
영화 위대한 비밀을 보면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 외에도 공간 활용이 돋보입니다. 실내 공간, 자연 공간을 비롯한 실외 공간 둘다 잡아내는 솜씨가 보통이 아닙니다. 감독이 '투모로우', '2012' 등 재난 영화로 유명한 롤란트 에머리히인 점과 무관치 않겠네요. 덕분에 영화 화면 하나하나 즐겁게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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