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디 플레이어 원은 평이 극과 극으로 갈릴 수 있는 영화입니다. 우선 저는 무척 재밌게 봤습니다. 2시간 20분짜리 영화기 때문에 중간에 좀 지루한 부분은 있었지만, 그래도 최종평을 하자면 재밌었습니다.
레디 플레이어 원을 재밌게 보기 위해서는 한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80~90년대를 관통하는 대중문화에 대한 지식이 어느정도 있을 것. 레디 플레이어 원은 간단히 말해 지금 3040세대가 추억을 되살리며 보기 딱 좋은 영화입니다.
레디 플레이어 원에는 다양한 문화 코드가 등장합니다. 백투더 퓨처의 자동차를 비롯해 일본 애니메이션 아키라의 오토바이, 아이언 자이언트, 건담같은 로봇, 다양한 게임 캐릭터는 물론이고 배트맨, 슈퍼맨 등 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아이콘들이 다수 등장합니다.
레디 플레이어 원에 워낙 등장하는 요소들이 광범위해 영화를 보는 내내 누구든 자신의 추억을 자극하는 캐릭터, 혹은 상징들을 10개 이상은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절묘하게 영화 속에 녹아들어 있어 그냥 스쳐지나가는 장면인데도 집중을 하게 만듭니다.
자신이 게임이나 만화 영화 음악 등에 푹빠진 어린 시절을 보냈다면, 레디 플레이어 원은 종합선물세트 중에서도 특급 선물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엄청난 추억의 도색을 벗겨내면,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의 서사는 참으로 단순합니다. 위기를 맞이한 가상 세계, 이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는 3가지 비밀을 풀어야 한다. 그리고 주인공은 친구들과 힘을 합쳐 3가지 비밀을 풀고 가상 세계를 구한다.
고전 판타지 소설들이 수세기에 거쳐 써먹었던 진부한 서사 구조를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은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앞서 설명드린 문화 컨텐츠들에 애정이 부족하다면 이 영화는 그저 나는 모르는데 남들은 좋아하는 패러디로 가득한 CG로 잔뜩 도배된 유치한 오락물일 뿐입니다. 게다가 그런 진부한 서사의 영화가 무려 2시간 20분!
그래서 이 리뷰를 적기전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온라인에서 만날 수 있는 레디 플레이어 원의 평들이 워낙 갈렸기 때문이죠. 누구는 재밌다, 누구는 재미없다. 하지만 재밌다고 하는 측과 재미없다고 하는 측 모두 분명한 논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재밌게본 저도 재미없다고 주장하는 관람객들의 심정에 충분히 동의하구요.
레디 플레이어 원을 재밌고 즐겁게 보는 방법은 마치 오래된 사진첩을 보는 것 같은 태도를 취하는 것입니다. 대단할 것 없고 사실 너무 뻔하디 뻔한 이야기지만, 오래된 사진첩에는 한장 한장 추억이 진하게 묻어있습니다. 앨범 위에 쌓인 먼지를 손으로 툭툭 터는 그 순간부터 먼지와 함께 공기 중에는 추억이 가득해집니다.
즐거웠던 순간만을 꽉꽉 눌러담은 사진첩에는 그리운 얼굴들이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그 웃음을 보는 것 만으로도 어느새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져, 자기도 모르게 웃음짓는 그런 감각. 딱 이런 감각으로 영화를 보신다면 2시간이 넘는 진부한 이야기도 재밌게 보실 수 있을겁니다.
극의 개연성같은 것을 따지고 들면 안됩니다. 우리의 추억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것이 완벽하고 절묘하게 짜여진 기억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이 흔적이죠. 그 이유 하나때문에 아름다운 겁니다. 그리고 이런 무적의 논리는 이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도 그대로 통용됩니다.
레디 플레이어 원은 가상게임을 소재로 한 만큼 CG를 다루는 솜씨는 능숙합니다. 냉정히 따지면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에서 별론 진보한 것 같지 않아보이지만, 최소한 아바타 급은 됩니다. 서사의 진부함을 감추기 위해 엄청난 물량을 쏟아넣었는데 이것이 제대로 먹힙니다.
80~90년대 게임, 영화, 만화, 음악 이런것들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도 레디 플레이어 원의 초반 레이싱 씬이나 전투 장면들에서는 나름 흥미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이것만으로 전체 영화를 다 재밌게 보기에는 영화가 너무 깁니다. 사족들을 다 잘라내고 좀 길이를 줄이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스필버그 감독은 워낙 다양한 장르에서 많은 영화를 찍은 다작감독이라 어느 한 장르 전문감독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제가 생각하는 스필버그는 스릴러 장르의 천재였습니다. 데뷔작에 가까운 1971년작 듀얼이나 공전의 히트작 죠스, 그리고 제가 극장에서 보고 감탄을 금치못했던 쥬라기 공원 등 스필버그는 여느 스릴러 전문 감독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필모를 가지고 있죠.
이후에 드라마 장르에 더 몰입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저는 스필버그의 스릴러 영화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이번 영화가 SF 스릴러지 않을까 잠깐 기대했었는데 결과는 전혀 아니었네요. 조금 아쉽습니다.
이하는 레디 플레이어 원의 스포를 담고 있습니다.
----- 스포 주의 -----
온라인에서 논란이 되는 포인트 중 하나가 레디 플레이어 원의 결말입니다. 결국 주인공은 가상 세계를 구하는데 성공하고 가상 세계의 주인 중 하나가 되는데, 그러면서 선택한 것이 가상 세계를 일주일에 이틀정도 셧다운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영화가 진부한 서사를 쓰다못해 마지막 결론까지 이렇게 진부하게 마무리한데 큰 실망을 느꼈습니다.
가상현실보다 현실이 Real 이 더 중요하다는 교훈섞인 결말은 이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과 전혀 맞지 않습니다. 영화 내내 가상현실의 친구들, 이름도 모르는 다른 플레이어들과 협동해 위기를 해쳐나가놓고선 갑자기 가상현실보다 현실이 더 중요하다는 결말을 내리다니... 만약 스필버그가 아니라 더 나이 어린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면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 생각할 정도로 납득하기 어려운 결말이었습니다.
적어도 쥬라기 공원을 만들어, 영화를 현실의 투영에서 가상공간의 거울로 만든 스필버그만큼은 이런 이야기를 해서는 안됬다고 생각합니다.(물론 이후 뮌헨 등 현실을 투영하는 영화를 더 많이 만들기는 했지만...) 이런 결말 때문에 어린 시절을 가상세계에 푹 빠져 살았던 저는 갑자기 뒤통수를 맞은 기분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사족을 하나 더 붙이지만,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영화 샤이닝에 대한 설명은 조금 잘못된 부분이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샤이닝을 창조자가 싫어한 창조물이라 평가했는데, 엄밀히 따지자면 영화 샤이닝은 스티븐 킹의 창조물이라 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영화 샤이닝은 스티븐 킹의 소설에서 이름과 배경 설정만 빌려왔을 뿐 거의 스탠리 큐브릭의 구미에 맞춰 제작된 영화입니다.(심지어 영화의 배경이 된 호텔의 운명도 차이가 납니다.) 그래서 저는 이 부분에서 고개를 갸웃 거렸습니다. 창조자가 싫어하는 창조물이라고 하기에 영화 샤이닝은 너무도 스탠리 큐브릭의 작품입니다.
램페이지 영화 관람평 Rampage 원작 게임과의 비교/ 알아도 영화관람에 지장없는 소소한 스포 함유
쥬라기월드2 : 폴른 킹덤/ 시나리오는 3류지만 1류의 기술력에 사랑스런 공룡들이 잔뜩 나오니 신난다/ 뒤에 스포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