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이프 오브 워터 리뷰 + OST/ 장르의 선을 넘나드는 거장의 솜씨/ 결말 스포 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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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 12. 24. 20:08
제가 아는 기예르모 델토로 감독은 판타지 영화보다는 SF 영화 감독입니다. 제가 기예르모 델토로 감독의 영화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이 퍼시픽 림이기때문이죠. 물론 판의 미로도 재밌게 봤지만, 그것보다는 거대 로봇이 거대 괴수와 함께 건물 박살내는 영화가 더 멋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은 매우 의외의 작품이었습니다. 이제까지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보여주었던 날선 주제의식은 사라지고 매우 부드럽고 말랑거리는 시선만 남았기 때문입니다.
익히 알려진 것 처럼 셰이프 오브 워터는 말을 잃은 여주인공 엘라이자 에스포지토(샐리 호킨스 분)와 양서류, 어인, 인어 혹은 물의 신(더그 존스 분)이 교감하고 사랑을 나누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보통 로맨스 물은 두 남녀의 사랑이 깊어지는 과정을 대사로 표현하게 되는데 셰이프 오브 워터는 이 과정이 없습니다. 여자는 말을 못하고 남자는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런 비언어적인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해야 하는 제약이 도리어 영화의 강점으로 변환됩니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얼핏 생각하기에 미친짓 같은, 사랑의 속삭임 없는 로맨스물을 압도적인 영상미로 실현시켜 버립니다. 냉전이 한창인 미국에서 말못하는 여주인공과 물고기 남주인공의 사랑이야기라는, B급 무비아니면 상상가지 않는 난제를 '물' 이라는 촉매를 활용해 아름답게 그려내는데 성공합니다.
제 74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 제 75회 골든글로브 감독상을 수상한 이유가 충분히 납득갑니다. 말도 안되는 소재를 가지고 멋진 로맨스 영화를 만들어 버렸으니 상을 안줄 도리가 없을 정도죠.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은 이번 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작품상, 감독상, 음악상, 미술상 등 4관왕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캐릭터들을 보며 저는 이상하게 기예르모 델 토로의 공포 영화 '악마의 등뼈'가 생각났습니다. 전쟁 한복판에 던져져 신음하는 악마의 등뼈 등장인물들이 냉전의 한복판에서 하루하루 반복된 삶을 사는 셰이프 오브 워터 등장인물들 위에 오버레이 되어 보였습니다.
감독은 악마의 등뼈와 판의 미로에서 보여주었던, 무언가 결여된 등장인물과 그 결여가 캐릭터들의 행동동기가 되도록하는 방식을 그대로 사용합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캐릭터를 보는 시선이 날섰던 전작들에 비해 많이 유해졌다는 것이죠.
말못하는 여주인공, 동성애 기질이 있는 늙은 화가(거기다 머리카락 집착증), 무능한 남편에 불만 가득한 흑인 여성, 과학에 열정을 가진 스파이 등 자신에게 빠진 한 조각을 찾고자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을 한걸음 떨어져 그려내던 악마의 등뼈나 판의 미로와 다르게 캐릭터의 안으로 깊게 들어가고 그것을 따뜻한 톤으로 그려냅니다.
----- 스포주의 -----
참고로 셰이프 오브 워터의 결말은 '해피엔딩'입니다. 여주인공 엘라이자와 남주인공 인어가 함께 바다 속으로 사라집니다. 셰이프 오브 워터의 포스터가 바로 그 마지막 장면을 잘 담아내고 있습니다.
엘라이자가 어떻게 물 속에서 숨을 쉴 수 있게 되는 지는 마치 어느 동화와 같습니다. 남주인공 인어의 '사랑을 담은 키스'가 물 속에서 의식을 잃은 엘라이저를 깨우고, 또한 그녀를 자유롭게 숨쉬게 만듭니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명백히 로맨스물로 평가받아야 하겠지만, 어떻게 보면 SF물이고, 어떻게 보면 호러이고, 어떻게 보면 그냥 군상극이기도 합니다. 이런 다채로운 모습이 셰이프 오브 워터의 장점이고, 이 영화가 미려한 영상미를 벗어내도 좋은 영화라고 평가할 수 있는 포인트입니다.
역시 감독상을 받을만 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섞어내기 어려운 로맨스, 판타지, SF, 호러의 장르적 클리셰들을 어느 것 하나 튀지 않게 잘 버무렸습니다.
다루는 장르가 복잡하면, 배우들의 연기가 산으로 가기 쉬운데, 셰이프 오브 워터는 매우 안정적인 연기 흐름을 보여줍니다. 감독이 무슨 재주를 부렸는지 모르지만, 배우들의 캐릭터 이해도가 매우 뛰어납니다. 거의 씬마다 장르가 바뀌는 영화인데도 배우들은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캐릭터를 연기해내, 영화는 흔들리지 않고 위태로운 외줄타기를 완주합니다.
특히 악역 리처드 스트릭랜드를 맡은 마이클 섀넌의 광기와 냉정을 넘나드는 연기는 영화를 매우 풍성하게 만들어 줍니다. (극중 핏물 튀기는 장면들로 '셰이프 오브 워터'를 19세 이상 관람 영화로 만들어 주는 일등 공신이기도 합니다.)
셰이프 오브 워터를 추천하겠냐고 묻는다면 매우 난감한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겠습니다. 이 영화의 장르부터 뭐라고 규정해야 할 지 모르겠네요. 로맨스라고 하기에 남자주인공은 무려 양서류고, 영화는 시종일관 어둡고,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이 사랑을 더해가는 핵심 이벤트도 고작 집안에서 벌어집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영상미와 음악이 수만마디 대사보다 많은 이야기를 해줘 두 존재의 사랑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중간중간 지루해서 졸뻔한 장면도 분명 있지만, 이만하면 재미도 놓치지 않았구요.
셰이프 오브 워터 OST 'You'll never know'
장르적 문법에 충실한 영화를 원하신다면 비추, 다양한 재료를 비벼 놓았는데 그것이 그냥 비빔밥이 아니라 미슐랭 1스타급 요리가 되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추천하겠습니다. 빛과 물을 이용해 뽑아내는 감각적인 영상이 궁금하신 분들에게도 추천합니다.
다만 퍼시픽림으로 기예르모 델토로 감독에 입문하신 분이라면, 이건 완전 다른 감독이 만들었다고 해도 틀리지 않은 작품이니 다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기예르모 델토로가 제작한 퍼시픽 림 2편이 곧 개봉하니, 그영화를 기다리셔도 좋겠네요.)
셰이프 오브 워터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전작들인 악마의 등뼈, 판의 미로같이 한마디로 규정 내리기 어려운 영화입니다. 장르의 선을 넘나드는 장인의 솜씨를 보고 싶으시다면 과감히 추천! 그렇지 않으시다면 당혹감을 감추기 어려운 영화가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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